수라도

중편소설 수라도는 이현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수라도 외에도 시선에 대하여, 개와 맥주, 입석, 노조탄생, 대미란 제목의 소설로 아우러져 있다. 수라도에는 부도한 인쇄공장의 사장인 나와 박 노인으로 묘사되는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진 등장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명분과 실리로 대변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채권자들을 피해서 시골의 절을 찾은 나와 군수사관 등을 경험했지만 은퇴 후 가족들에게 내몰려 절까지 오게 된 박 노인, 개인소유의 절은 총무원장의 부정을 두고서 둘 사이에 의견 충돌을 보여주면서 읽는 사람에게 문제를 제시한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실리를 추구하는 박 노인은 자신을 위해서는 적당한 희생거리를 찾아내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내쫓긴 몸이지만 절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립시키려고 총무원장의 부정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자기편을 확고히 하려고 법사에게는 성의 쾌락을 주지 스님에게는 잉어탕을 제공하면서 주도면밀하게 일을 진행한다. 박 노인의 술친구이던 나는 박 노인이 일을 확대하는 것에 반감을 품지만 그를 저지하지는 못한다. 소설 속의 나는 청렴결백한 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적당한 명분을 찾는 선에서의 악한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역사 속의 누구처럼 절대적이고 대쪽같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 주위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실리를 위해 즉 탐욕을 충족하고자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절의 이권은 박 노인에게 돌아가고 남아있던 공장기계마저 어이없이 잃게 되는 소설 속의 나는 절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끝을 맺는다. 자신의 이익 추구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길일까? 시장경제와 사민주의 나 참여경제 등으로 대표되는 대안 정책과 비교까지 확장시키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개개인의 사고 정도로 한정한다면 고민을 안겨주는 소설이 될 것이다.

by 봄바딜 | 2007/10/20 21:26 | 트랙백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이 책은 중화사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우리의 역사의식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자주적인 우리의 시각에서 고구려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주몽에서 발해까지 주로 동북공정에 대한 반론과 역사학계에서 잘못 인식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30가지 쟁점을 제시하며 자주적인 역사관점으로 고구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중화사상에서 시작되는 동북공정의 면면을 살피면서 고구려의 독자적인 세계관이 존재함을 밝히며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자주적인 사관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일례로 낙랑군과 낙랑국이 별개의 존재이며 연개소문에 대해서 중국 쪽의 사료만을 취급하여 비판적으로 서술한 삼국사기에 문제를 지적한다. 발해에 대해서는 우리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당나라의 구당서와 신당서의 서술이 다름이 원인이며 고구려 송화강의 시골출신 대조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구당서와 신당서를 제외하고도 발해에 대해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구성으로 소수인 고구려인이 지배한 것으로 우리의 역사라고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애초에 말갈과 고구려가 통역이 없을 정도로 방언수준의 언어차이가 존재했을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고구려에 대한 역사의 인식은 이런 유목민족인 말갈이나 선비, 흉노를 빼놓고는 완전한 역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말갈과는 말이 통했고 선비족은 고구려를 같은 일족으로 인식했으면 흉노와 고구려는 태양을 소재로 하는 탄생설화 가지고 있다. 설화가 구전됨을 생각해보면 일족의 개념은 아니더라도 더욱더 자세한 고구려의 역사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북공정 이외에도 교과서에도 기록된 내용에도 반문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우리가 정설로 아는 부분에 대한 반문도 여럿 볼 수 있다. 데릴사위제도 등이 대표적인데 고구려 초와 말을 비교하면서 3c 초에 존재하는 데릴사위제도를 매매혼적 데릴사위제도로 정의하지만 7c로 가면 매매혼적인 성격이 없어지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매매혼적 성격의 결혼이 성행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 밖에도 고구려의 생활상이나 종교 설화 등을 이야기하면서 고구려에 대한 다방면의 소개도 이루어진다. 요즘은 덜한다지만 딱딱한 교과서보다도 고구려를 이해하는 데는 이 책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교과서와는 다른 관점이 존재하므로 그 차이점도 파악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책의 주된 목적은 동북공정에 대한 고구려의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에 있고 고구려에 대한 자주적인 세계관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를 제시하며 잘못된 해석은 고구려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중화사상에 의한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주변국들을 무조건 제후국으로 인정하는 사관에 우리가 스며들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같이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지속적인 대응을 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요지일 것이다. 고구려에 태왕은 중국의 황제와 동급이 아닌 다른 존재이다.


자주적 사관의 역사가 한국인으로서 선뜻 다가가기 쉽고 수긍하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고구려의 유적을 제멋대로 중국식으로 고치는 동북공정이 진행 중인데 자주성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우리의 자주적인 사관조차도 역사의 해석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닐까? 후대에서 바라보는 역사에서 객관성을 따지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또한, 현재의 역사도 객관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엔 개인의 선택과 그러한 선택의 다수가 지지하는 어떤 것이 그 집단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주적인 사관이 한반도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으면 동북공정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애초에 그것은 사관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힘의 논리일 뿐 학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고구려의 유적답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적도 답사 내용도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나와있는 중국의 현재의 모습이 지금의 중국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사상을 포기한 자들이 목표로 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예 포기를 해버리니 뭔가 고민거리가 하나가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by 봄바딜 | 2007/10/15 23:15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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